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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좋은* 글

당신 마음의 그림자는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마음의 그림자는 안녕합니까? / 안광복 상처 입고 으르렁대는 짐슴은 위험하다. 위협을 느끼는 상황, 짐승은 조그만 자극에도 죽자사자 달려든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다. 치열한 생존경쟁, 우리 영혼은 매일 상처 입고 피를 흘린다. 그 때마다 울부짖으며 상대를 물어뜯고픈 충동이 불끈거린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을 숨길 줄 아는 동물이다. 성숙한 인격은 치솟는 감정을 꾹꾹 누른다. 그러곤 '페르소나(persona)'를 얼굴에 뒤집어쓴다. 페르소나는 '가면'이라는 뜻으로, '인격(personality)'의 어원이 되는 말이다. 우리는 페르소나를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바꾸어 쓴다. 직장에서는 과장, 부장, 사원 등 자신에게 주어진 직함에 맞는 페르소나를 '연기(演技)'한다. 자녀 앞에서는 아빠, 부모님에게는 아들이라는 페르소나에 맞게끔 움직인다. 우리 삶은 페르소나를 쓰고 하는 생활연기의 연속이다. 가면을 쓰고 사는 삶이 행복할까?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진다"라고 말한다. 상황에 맞게 '팀장'으로, '선배'로, '며느리'로 잘 처신하는 사람은 유능해 보인다. 그러나 페르소나를 잘 연기할수록 스트레스도 커지기 마련이다. 속이 썩어가는데 겉으로는 웃으며 사람을 대하기가 어디 쉽던가. 지위가 올라가고 능력을 인정받을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는 헛헛함과 분노가 같이 쌓여간다. 이것이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진다"는 말의 의미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치이다 보면, 별것 아닌 일에도 벌컥 화를 내기 쉽다. 애먼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만만한 사람에게 짜증을 부리는 식이다. 페르소나 뒤에 억눌려 있던 내 그림자가 튀어나오는 순간이다. 성공한 사람 중에는 괴팍한 이들이 적지 않다. 직장에서는 잘나가지만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는 '폭탄'으로 통하는 이들도 드물지 않다. 자신의 그림자를 돌보지 못한 자들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나의 그림자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죽도록 미운 사람을 떠올려 보라. "저 사람은 아부쟁이야", "저자는 교활하게 자기 이익만 챙겨" 등등, 비난의 말이 절로 터져나올 테다. 이 때 문장의 주어를 '나'로 얼른 바꾸어 보자. "나는 아부쟁이야", "나는 교활하게 내 이익만 챙겨. 융은 "내 안에 없는 것은 미워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네 살 먹은 아이가 과자 달라고 떼쓰는 광경은 귀엽다. 그러나 특권을 앞세우며 이익을 챙기는 모습에는 분노가 끓어오른다. 왜 그럴까? 우리는 네 살 아이처럼 과자를 탐하지 않는다. 그러나 특혜를 누리고픈 갈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는 차마 꺼내지 못하는 바람을 누군가가 감히 펼치려 할 때, 격렬한 감정이 솟구쳐 오를 때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내 안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일이다. 내가 싫어하는 상대의 모습이 나의 감춰진 속마음이라는 뜻이다. "삶의 전반기가 빛을 좇는 과정이었다면 후반기는 내 안의 그림자를 보듬는 시기여야 한다." 융의 충고다. 상처를 내버려둔 채 영원히 달릴 수는 없다. 페르소나가 인생의 전부인 양 살아온 사람은, 페르소나 없이 지내는 법을 잊어버린다. 일터에 아득바득 매달리는 까닭은 소득 때문만은 아니다. 오로지 직장의 페르소나로만 살아온 사람은 일터 밖에서 삶을 꾸리는 법을 모른다. 그러니 자신의 그림자를 감출 또 다른 페르소나를 찾는 데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연령은 마흔을 넘어갈 전망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중년의 위기'에 접어든 모양새다. 언제까지나 경제성장이라는 밝음만을 좇아 달릴 수는 없다. 이제는 우리 내면의 어둠을 다독이는 데도 공을 들여야 한다. 빛을 향해 가는 길은 쉽다. 목표가 분명하고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자를 다스리는 일은 어렵다. 많은 부분이 어둡게 감춰져 있는 탓이다. 인터넷 세상은 사회의 온갖 일들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하다. 덩달아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스스로에게 되물어보라. 내가 손가락질하는 저 허물이 바로 나의 모습은 아닌가? 모든 문제의 해결은 내 안의 그림자를 비추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평균연령 마흔, '생애 전환기'에 접어든 대한민국이 갖추어야 할 지혜다. -『월간에세이』(201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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