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배
이승희
잠의 뒤꼍으로
꽃이 피듯 배가 밀려왔다
나의 등을 가만히 밀어왔다
죽은 이의 편지 같아서
슬프고 따뜻해서
그렇게 배에 올랐다
배는 공중에 떠서
시작과 끝이 없는 이야기처럼 흘러갔다
눈이 내리듯 천천히 흘렀다
가는 것이 꼭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승희 시인
1965년 경북 상주 출생. 1997년 계간 '시와 사람' 작품 발표,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제4회 전봉건 문학상.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이라는 속도에 떠밀려 저편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 순간에도 시간은 끊임없이
우리를 저승이라고 불리는 보이지 않는
저편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 속 화자는 꿈에서
“가만히” 밀려오는 배를 만났습니다.
그는 어쩐지 “슬프고 따뜻해서” 그 배에 오르게 됩니다.
“배는 공중에 떠서/ 시작과 끝이 없는 이야기처럼”
“천천히” “흘러”갔습니다.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포근하고 따스한 “눈이 내리듯”
“가는 것이 꼭 돌아오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소멸을 따스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는
이 작품은 고요한 슬픔의 아우라를 품고 있습니다.
최형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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