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 / 류시화
나에게 부족한 것은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때
한쪽으로 비켜서 있는 이들
봄의 앞다툼 속
먼 발치에 피어나는 무명초
하루나 이틀 나타났다 사라지는 덩굴별꽃
중심에 있는 것들을 위해서는 많은 눈물 흘리면서도
비켜선 것들을 위해서는 눈물 흘리지 않았다.
산 자들의 행렬에 뒤로 물러선 혼들
까만 씨앗 몇 개 손에 쥔 채 저만치 떨어져 핀 산나리처럼
마음 한 켠에 비켜서 있는 이들
곁눈질로라도 바라보아야 할 것은
비켜선 무뉘들의 아름다움이였는데
일등성 별들 저 멀리 눈물겹게 반짝이고 있는 삼등성 별들이었는데
절벽 끝 홀로 핀 섬쑥부쟁이처럼
조금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야
저녁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
아 .... 나는 알지 못했다.
나의 증명을 위해
수많은 비켜선 존재들이 필요했다는 것을
언젠가 그들과 자리바꿈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한족으로 비켜서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버켜선 세월만큼이나
많은 것들이 내 생을 비켜 갔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아무도 보지않는 곳에서 잠깐 빛났다.
모습을 감추는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_ 류시화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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