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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좋은* 시

노인의 설날 - 박 인걸

이제는 하나도 기다려지지 않는다.
나에게 설은 많이 부담스러울 뿐이다.
떡국 한 그릇에 한 살을 강매당할 때
몇 개 남은 곶감이 꽂이에서 사라지듯
바들바들 남은 나이를 붙잡는다.

수명(壽命)이 귀한 것을 이전엔 잘 몰랐다.
뭉텅이 돈을 빼내 쓰듯 허비했다.
화장터로 죽마고우들이 불려가던 날
내 차례가 온다는 것을 의식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설날을 기다리며
눈썹이 샐까봐 날밤을 지새우고
세뱃돈 받을 꿈에 가슴 설레던
동심(童心) 시절이 천국이었다.

새파랗던 시절 동행서주(東行西走)로
오직 꿈을 위하여 앞만 보며 달렸다.
어느 날 존재를 의식하던 날
생(生)의 종착역이 저기 보인다.

당장 불려가도 아쉬움은 없지만
추한 모습으로 끌려가는 건 아주 싫다.
당당하게 내 발로 걸어가고 싶다.
설날이 싫지만 멈추게 할 순 없으니
오늘부터는 남은 설날을 계수(計數)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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